틈과 선 -이상은 작가의 작업에 대하여-

 

그녀의 작업은 캔버스 위에 막(膜)을 생성해 나가는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캔버스를 감싸려는 의식이 최근에는 더욱 더 강해지고 있으며 외부에 존재하는 무언가에 침식되지 않게 막을 덮어씌우고 있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실을 당기듯이 캔버스 위에 색선(色線)을 반복해 그어 가는 작품과 색선을 밀집해 엮어 채워 가는 작품을 고찰할 때, 길잡이가 되는 것은 '틈'의 유무이다. 논(論)을 진행하면서, 작가의 작품 주제에 나타나는 말을 이용해서 전자(前者)를  '시간 시리즈', 후자(後者)를  '공간 시리즈'로 표기하기로 한다.

먼저 '시간 시리즈'에 대해 고찰해 보면, 이 시리즈에서는 반복해서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선이 그어지고 그때마다 세분화된 화면에 '틈'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틈'에 의해서 더욱 캔버스 위의 '선'에 주목하게 된다. 여기에서 '공간 시리즈'의 선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 두 개는 같은 '선'이지만, 비슷하면서도 다른 '선'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왜 그러한 것일까.

이 의문을 풀려고 했을 때, '각각의 선을 선으로 존재하게끔 하는 것은 surface(바탕, 지지체)인지 형태인지'라는 물음이 생겨났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surface란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나 종이 등의 지지체(地)의 표면이다. 나는 '시간 시리즈'의 선은 surface에 의해서, '공간 시리즈'의 선은 형태에 의해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surface와 형태의 문제는, 시간과 공간에 적용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개는 '틈'의 유무에 의해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시간 시리즈'의 경우, '틈'이라는 공간에 의해서 세분화 되어 가는 결과, 즉 시간이라는 부분으로 사고(思考)가 향한다. 그에 비해 '공간 시리즈'의 경우, 색선의 틈이 없는 밀접한 상태, 즉 '틈'의 소멸에 의해서 '공간'이라는 부분으로 사고가 향한다. '틈'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 시리즈'에서는 오히려 형태만이 존재하며 시간의 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 시리즈'는 새겨진 시간을 느끼게 하며, '공간시리즈'는 시간의 정지한 공간을 느끼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선'이라고 하는 것은 점(点)도 면(面)도 아니다. '선'은 점으로부터 면으로, 혹은 면으로부터 점으로 향하는 흐름 속에 존재한다. 말하자면 시간 시리즈는 원래의 캔버스 상태의 면에서 세분화 해가는 작업으로 면으로부터 점을 형성해가는 작업이라 생각되고, 공간 시리즈는 점으로부터 시작해서 면을 형성해가는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시간 시리즈'와 같이 캔버스 위에 선을 그은 작품, 그리고 '공간 시리즈'와 같이 캔버스 안에 선을 그린 작품은 대조적인 '선'의 표현이며 캔버스라는 지지체에 대한 작가의 입장, 그리고 작품이 가지는 공간의 양상에 대한 입장까지도 대조적이다. 이 두 개의 시리즈의 대조성은 '틈'을 기준으로 해서 생각하는 것으로 작품이 가지는 깊이를 풀어 갈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선'이 점과 면의 사이에 있듯이 시간과 공간 시리즈로 나누면서도 결국 선은 그 앞에 시간이나 공간의 존재를 가리키고 있을 뿐이며, '선' 자체가 의미하는 것은 시간도 공간도 아닌, 그 사이에 있는 생명적인, 혹은 유기체적인 것일 것이다. 점과 면 사이에, 그리고 시간과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선'이며 '생명'이다.

나의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시간 시리즈'는 천이고 '공간 시리즈'는 나이테이다. '시간 시리즈'를 천으로 이미지화하는 데에는 선을 반복해서 긋는다는 작업이, 실을 뽑아 천을 짠다는 행위와 겹쳐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물(천)은 짜진 실만 결과적으로 남지만, 그녀의 작품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아래에 surface인 캔버스가 선과 함께 존재한다. 또한 '공간 시리즈'를 나이테로 이미지화하는 데에는 나이테가 형태에 의해서 존재하는 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자와 같이 틈을 가지지 않는 작품은 때로는 인공물적인 (철 등의 금속) 차가운 이미지를 주지만 그녀의 작품에는 그것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녀의 작품은 규방예술과 같이 여성적인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시간 시리즈'이든 '공간 시리즈'이든 그녀가 반복해 긋는 선은 인간의 걸음이나 삶을 연상시킨다. 양 다리를 교대로 앞뒤로 움직이는 반복적 행위에 의해 사람은 앞으로 걸어간다. 아침에 눈 뜨고 각자 활동하고 밤에 잠드는 그 반복이 생활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한다. 그녀가 작품 주제로 '시간 쌓기'나 'space'를 사용한 배경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은 그 제작 과정의 반복 속에서 인간의 숨결을 느껴지게 하는 것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구리스 마리코(小栗栖まり子)